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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아나코백과

김좌진(金佐鎭, 1889년 12월 16일/음력 11월 24일~1930년 1월 24일/1929년 음력 12월 25일)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군인이다. 호는 백야(白冶)이다. 청산리 전투을 승리로 이끈 지휘관이었으며, 1930년 공산주의자 박상실에게 피살되었다.

목차

[편집] 생애

[편집] 청산리 전투

1920년의 청산리 전투 전과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다. 박은식독립운동지혈사(獨立運動之血史)》에서는 독립군 사령부 보고에 의해 1600명, 중국 관헌 보고에 의해 1300명, 그리고 일본영사 비밀보고(존재여부 미확인)에 의해 가노 노부테루(加納信暉) 연대장 이하 연대장 2명, 소대장 9명, 병졸 900여 명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범석의 《우둥불》에서는 1000여 명으로 주장하는 등, 한국측 자료에서는 일본군의 피해에 대해 1000명 대의 전사자수를 기록하고 있으나, 당시 일본군의 기록인 조선군사령관 보고 및 일본 육군 19사단의《間島事件鮮支人死傷者調》에서는 전사자 11명, 부상자 24명으로 보고 있으며, 장교의 사상은 없다.[1]

[편집] 그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

  • 중국 측에서는 백야를 죽인 자가 조선공산당 아성총국에서 파견한 무장공작대원 공도진(박상실)이라고 함.
  • 암살범 공도진은 최동범, 이복림, 박상실 등 여러 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짐.
  • 여류소설가 강경애가 김좌진장군 암살교사범 동거녀였다는 주장이 제기됨.
  • 양환준은 김좌진이 자유시 참변 후 좌익인물들의 활동에 관한 정보를 일경에 제공해 주고 그 대가로 활동대금을 받았기 때문에 청년단원에게 암살당했다고 증언함.
  • 일제에 매수당한 김일성(金一星; 북조선 김일성[金日成]과는 별개 인물임)이 박상실을 끌어들여 김좌진 암살을 부탁하였다고 함.
  • 조선공산당 ML파 조직에서 활동했던 지희겸(전 연변대교수)도 김좌진이 하얼빈 일본영사관 경찰부장 마쓰시마와 밀담한 이후 좌익인 공산주의자들을 많이 살해하였으니, 만약 화요회에서 죽이지 않았더라면 우리 ML파 공산당에서 죽였을 것이라고 증언함.
  • 일본제국이 조선 민족세력의 분열을 꾀하기 위해 좌·우익간의 대립을 부채질하였고 그 때문에 와전된 낭설이 퍼져 공산당이 김좌진을 오해하여 죽였다는 설이 있음.

[편집] 어록비

독립기념관에 〈단장지통〉이라는 시를 적은 어록비가 서 있다.

틀:인용문

[편집] 가족 관계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이라고 하나 김좌진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편집] 바깥 고리

[편집] 주석

  1. 佐々木春隆(1985)《韓国独立運動史の研究》(東京:国書刊行会)pp. 50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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