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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아나코백과

신채호(申采浩, 1880년 12월 8일 ~ 1936년 2월 21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이다. 본관은 고령, 호는 단재(丹齋)·일편단생(一片丹生)·단생(丹生)이다. [1] 필명은 금협산인·무애생·열혈생·한놈·검심·적심·연시몽인이며, 유맹원·박철·옥조숭·윤인원 등을 가명으로 사용하였다.

목차

[편집] 생애

[편집] 약력

[편집] 역사관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 독립운동가로서 국권을 회복하고자 모든 수단을 강구한 민족주의자로, 국사 연구와 교육을 중시하였다. 기존의 왕과 영웅 중심의 전근대적인 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사학을 내세웠다. 신채호와 박은식을 통해 정립된 민족사관은 일제에 의한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근대적, 주체적 역사관을 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저서 《조선상고사》에서 특히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보았다.

단재 신채호는 논설, 시, 소설등에서 역사 애국심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애국심을 키우기 위해서는 역사의식을 고취시킴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을지문덕, 최영, 이순신이라는 3대 영웅전을 썼고, 무력의 중요성을 주장했고, 영웅이 나와서 이 나라를 구하는 데에 적극적인 도움을 줘야한다고 주장했다.[6]

또, 신채호는 묘청의 난을 조선역사상일천년래제일대사건(一天年來日大事件)이라고 주장했다.[7]

신채호는 김부식의 사대적이고 중국 의존적 사관때문에 조선역사상에서 만주벌판이 역사상에서 사라지게 된 계기로 봤고, 반면 묘청을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정신을 가진 정치가이자 승려로 봤다. 또, 묘청의 난을 진압한 수 김부식은 문하시중판이부사감수국사(門下侍中判吏府事監修國史)가 되어 쓴 《삼국사기》를 사적 가치가 없다고 평가하였으며 강렬하게 비판하기도 하는 등, 강력한 군대와 역사적 자주성을 강조하였다.

[편집] 독립운동가

무정부정의자(아나키스트)로 동방 아나키스트 연맹에 참여하였다. 또한 독립을 위해서는 철저한 비타협적 투쟁과 민중 중심으로 민중을 혁명의 본영으로 규정하고 테러폭력을 인정하였다. 말년에는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하였다.

[편집] 기타

"꿈하늘", "용과 용의 대격전"과 같은 환상적 기법의 우화적 소설을 쓰기도 하였다. 소설에는 주로 항일사상을 고취시키는 내용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

[편집] 가족

집안어른들의 강요로 풍양 조씨와 결혼하였으나, 불행한 결혼생활끝에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김관일이 우유에 체해서 병사한 일을 계기로 이혼하였다. 북경에서 박자혜와 재혼하여 수범과 두범 아들 둘을 낳았는데, 신두범은 단재 선생이 여순감옥에서 옥사한 후 1942년 영양실조로 죽었고, 1944년 박자혜도 병사하였다.[8]

2008년 6월 15일, 정부는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무국적 독립운동가들도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될 수 있도록 하는 관련 법률을 개정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다.[11]

[편집] 저서

[편집] 함께 보기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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